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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사찰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

 

 

 

통일신라시대 초기인 신문왕 2년(682)에 세워진 쌍탑이다.
전체 높이 13.4m로 화강암으로 된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으며, 두 탑이 같은 규모와 형식을 띄고 있다.
2층 기단(기단부)중 하층 기단은 지대석과 면석이 같은 돌로 만들었는데 모두 12매의 석재로 이루어졌으며,
상층 기단은 면석 12매에 갑석 8매로 이루어져있다.
이렇게 탑의 각 부분들이 하나의 통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십 개의 부분석재로 구성된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기단을 2층으로 한 것은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형식으로 이후 한국석탑의 전형을 이루었다.
균형미가 빼어나고 격조가 있으면서 힘이 넘치는 호국탑이다.

 

 

 

 

“문무왕의 염원이 깃든 석탑”

문무왕은 삼국통일 후 나라를 굳건하게 지키기 위한 염원으로,
동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호국사찰인 ‘감은사’를 세운다.
그러나 정작 문무왕은 감은사의 완공을 못본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는 세상을 떠나면서
“내가 죽어서도 동해바다를 지키는 용이 되어 신라를 수호할 것이니 나를 동해바다에 묻도록 하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아들인 신문왕은 부왕의 유지를 받들어
즉위한지 2년 째 되던 해에 감은사를 완공하였고 바로 같은 해 감은사삼층석탑을 세웠다.
문무왕과 신문왕 두 대에 걸친 바램은 그대로 이어져 그 후 통일신라는 오랫동안 태평성대를 누렸다.
그러나 지금은 절터 위에 석탑만 남아서 1500년 전 문무왕의 염원을 추억하고 있다.

 

 

 

 

감은사터 넓은 앞뜰에 나란히 서 있는 쌍탑이다.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으며,
옛신라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 직후 쌍탑가람으로 가는 최초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당시 틈만 나면 동해로 쳐들어 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세운 절로,
동해 바닷가인 이 곳에 터를 잡았다. 문무왕은 생전에 절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즉위 이듬해인 682년에 완공하였다.
이러한 호국사상은 탑에도 이어져 장중하고 엄숙하면서도 기백이 넘치는 탑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부분들이 하나의 통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십개에 이르는 부분석재로 조립되었다는 것이다.
탑을 세운 시기는 신문왕 2년(682)으로,
1960년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서쪽탑 3층 몸돌에서 금동 사리기(보물 제366-1호)와
금동 사리외함(보물 제366-2호)이 발견되었다.
경주에 있는 삼층석탑으로는 가장 거대하며,
동해를 바라보는 높은 대지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모습은 실로 한국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공식명칭은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
주소는 경북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55-3, 55-9

<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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