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꾼의 한자어가 '태공'이고,
이들은 주로 '강'에서 낚시를 하기 때문에
낚시꾼을‘강태공'이라 부르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강태공은 원래 중국 주周나라의 정치가인 강상姜尙을 가리키는 말이다.
강상이 오늘날 낚시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것은 그와 관련한 다음과 같은 일화 때문이다.
본명本名은 강상姜尙이다.
그의 선조가 여呂나라에 봉하여졌으므로 여상呂尙이라 불렸고,
태공망太公望이라고 불렀지만 ‘강태공’이라는 이름으로 세간에 더 알려져 있다.
강태공은 오랜 세월 은자隱者로 지내다
나이 일흔이 되어 문왕文王을 만나 은殷을 멸하고 주周를 세운 인물이다.
여상呂?이라고 말하기도 하나 이는 부계혈통에 따른 이름이고,
당시는 모계혈통을 따르는 시대였으므로 강상姜尙이 본명이다.
자字가 자아子牙이므로 ‘강자아’로 일컫기도 한다.
탁월한 군사전략가로, 병법서「육도삼략六蹈三略」중「육도」는 그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훗날 주나라 문왕文王의 제안을 받아 그의 스승이 되었고,
무왕武王을 도와 상商나라 주왕紂王을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하였으며,
그 공으로 제齊나라 제후에 봉해져 그 시조始祖가 되었다.
전해진 이야기에 따르면,
강태공은 동해東海에서 사는 가난한 사람이었고,
집안을 돌보지 않아 그의 아내가 집을 나갔다고 전한다.
후일 주나라 문왕文王이 되는 서백西伯이 낚시를 하기 위해 위수渭水에 나왔는데
강가에서 낚싯바늘도 없이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는 노인이 있었다.
하도 신기해서 말을 건넸더니 보통인물이 아니었다.
서백은 무릎을 치며 “당신이야말로 나의 아버지 태공人公이
주를 번창케 할 성인으로 오래 기다리고 있었던 인물이다” 하며
노인에게 군사軍師가 되어 줄 것을 청했다.
노인이 서백의 청을 수락하자 서백은 ‘태공망太公望’ 이란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주나라 무왕의 선군인 태공太公이 바랐던(望) 인물이었기에 그렇게 불렀다고 전해진다.
강태공 대한 전기는 대부분이 전설적이지만,
전국시대부터 경제적 수완과 병법가(兵法家)로서의 그의 재주가 회자되기도 하였다.
병서(兵書) 《육도(六韜)》(6권)는 그의 저서라 하며,
뒷날 그의 고사를 바탕으로 하여 한가하게 낚시하는 사람을 강태공 혹은 태공이라 하는 속어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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