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피었다 지는 꽃
살아온 흔적 중에 빛나는 일만 적으라 하네
높은 지위
남에게 자랑하여 고개 숙일만한 일들을
요약해서 적는 것이 약력이라네
나이 들면서 자꾸 뒷 쪽을 바라보는 것은
덧셈보다 뺄셈에 능숙해지는
바람을 닮아가기 때문이라네
바람이라고 적을 수는 없네
떠돌이였다고 말할 수는 없네
태어난 그날부터 지금까지
먼지처럼 쌓였다 사라져버린
그 수많은 날들을
나는 축약할 수가 없다
기억나지는 않으나
밥 먹고 잠들었던
잠들었다 부시시 깨어나던 동물의 날들을
나는 버릴 수가 없다
나는 약력을 쓰네
꿈이 꿈인 줄 모르고
꿈속을 헤매다가
꿈속에서 죽어서도
죽은 것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마디로 줄여서 약력을 쓰네
(나호열·시인,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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